감옥의 소통수단 타벽통보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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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7월15일 도산의 신병은 서대문형무소로 인도됐다. 

도산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의 특수감방에 들어갔다.

서대문형무소의 감방은 열악했다.

 

이곳은 이른바 개전의 정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 중대정치범들만 수감하는 특수 감방이었다. 도산은 7호실에 있었는데 바로 옆 6호실에는 김정련(1895~1968), 5호실에는 여운형(1885~1947), 8호실에는 오동진(1889~1944) 선생이 수감돼 있었다.

‘1평에 4명씩 수용 초열(焦熱) 지옥의 철장, 중태에 빠진 자만 3명, 사상범에 환자 속출’

 

 ‘사상범은 작은 방에 4명씩 수용하는데, 지금 같은 고열은 차마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음식물에 대하여 밥이란 겨가 반이나 섞인 좁쌀을 배급한다. 또한 형무소 안에서 사상범을 취급하는 것이 특히 가혹하여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타벽통보법의 실례.

이에따르면 ‘조직’이라는 단어는 ‘딱×9번(ㅈ), 똑×5번(ㅗ)=조, 딱×9번(ㅈ), 똑×13번(ㅣ), 딱(ㄱ)=직’으로 친다. 

 

박경목의 <식민지 근대감옥 서대문형무소>에서 펌자료.

 

 

■감옥의 소통수단 타벽통보법이란?

 

서대문형무소는 독방과 독방 사이에 두께가 2척이 넘는 시멘트 감방 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수감자들은 감방 벽을 딱딱 두드리는 소위 타벽통보법로 감방간 소통하고 있었다. 타벽통보법이란 무엇인가. 벽을 두드리는 숫자에 따라 자음은 얇게 ‘딱(ㄱ), 딱딱(ㄴ), 딱딱딱(ㄷ)…’ 하고, 그 다음은 조금 쉬었다가 모음으로 역시 두드리는 숫자에 조금 뚜껍게 ‘똑(ㅏ), 똑똑(ㅑ), 똑똑똑(ㅓ), 똑똑똑똑(ㅕ)…‘하며, 다시 조금 쉬었다가 받침의 순서로 얇게(똑) 두드려 이를 조합해서 주고받는 소통법이다.

 

아무리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젊은이라도 헷갈리지 않았을까. 그나마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지사들은 타벽통보법을 그나마 터득할 수 있었지만 해외에서 검거 투옥된 지사들에게는 ‘넘사벽’이었다. 문제는 이 타벽통보법으로 소통하다가 적발되면 무시무시한 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벽통보법을 가르쳐 준 이도, 배운 이도 모두 교도소 당국에 끌려가서 죽도록 매를 맞아야 했다. 또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무게가 다섯 관이나 되는 쇠땅방울(둥근 쇳덩이를 단 쇠사슬)을 발에 달고, 2~3년의 추가형과 정량의 3분의 1까지 밥을 줄이는 감식벌(減食罰)의 처분을 받아야 했다.”(김정련의 회고)

 

 

 감방간 소통이 끊기지 않으려면 열외 1명없이 타벽통보법을 배워야 했다. 6번방의 김정련 역시 7번방의 도산 선생에게 이 타벽통보법을 가르쳐야 했다. 김정련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걸리기라도 하면 38살 창창한 본인(김정련)이야 견디면 되지만 55살 도산 선생은 그 혹독한 추가징벌을 감당하기는 어려울텐데….

“무서운 모험이었지만 어느 일요일, 드디어 나(김정련)는 결심을 하고, 칼 위에 올라서는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도산 선생에게 암호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하지만 돌발사고가 터졌다. 7번방 쪽으로 바싹 대놓은 똥통 위에 올라가 도산에게 열심히 신호를 가르치던 김정련의 몸이 후들거리면서 얼결에 뛰어내리다가 똥통을 걷어차버리고 말았다. 바깥으로 순찰 중이던 간수가 감시구를 들여다보았다. 김정련은 순간 기지를 발휘했다. 미친사람 흉내를 내어 두손으로 똥을 퍼서 확 뿌렸다.

간수들에게 끌려간 김정련은 미친듯 취조관이나 의사에게 마구 달려들어 침을 뱉고 물어뜯고 고함쳤다. 간수들이 김정련을 뼈가 으스러지게 때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침내 김정련은 ‘미친 사람’이라는 판정을 얻었다.

 

김정련의 회고담이 심금을 울린다.

“미친 사람 판정을 받자 나는 도산 선생을 생각하고 오히려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김정련의 ‘형무소의 도산 선생-2081호의 오물 바가지’, <새벽> 1957년 4월호)

김정련 본인이 뼈가 으스러지도록 구타를 당했지만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도산 선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쁜 마음으로’ 참아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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